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엘리자베트 알렉산드라 루이제 알릭스 (문단 편집) === 러시아 대공비 시절 ===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f5423e51f7e9d76d58db3b06e8daa4db.jpg|width=100%]]}}}||{{{#!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Elisabeth Feodorovna, Grand Duchess.jpg|width=100%]]}}}|| || 옐리자베타와 세르게이 || 옐리자베타 표도로브나 대공비 || 세르게이와 엘리자베트는 1884년 6월 15일 [[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울 궁전]]의 예배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엘리자베트는 세르게이와의 결혼과 함께 [[루터교]]에서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했고, 이름도 러시아식인 옐리자베타 표도로브나로 바꿨다. 엘리자베트의 결혼식은 여동생 [[헤센의 알릭스|알릭스]]와 [[러시아 제국]]의 [[니콜라이 2세|니콜라이 황태자]]가 처음 만나게 된 자리이기도 했다. 로마노프 황실을 비롯해 러시아의 국민들도 아름답고 매력적인 새 대공비 옐리자베타 표도로브나에게 호감을 품었다. 그러나 엘리자베트 부부에게는 평생 아이가 없었는데 아예 임신을 못했다.[* 미남인 세르게이 대공은 자신의 외모에 대단히 예민했는데 항상 [[코르셋]]을 입어서 허리선을 날씬하게 다듬는 거야 당시 [[프로이센]] 육군장교들의 군기의 영향을 받아 그렇다 쳐도, 늘 보석 반지를 한 개도 아니고 여러 개 끼고선 얘기할 때 만지작거리는 버릇이 있었고 참고로 이 버릇은 48세에 암살당할 때까지도 있었다고. 또한 세르게이 대공이 암살되고 혁명이 일어나고 훨씬 뒤에 로마노프 왕조 관련 각종 책들이 나오면서 세르게이 대공의 동성애자설이 유포되었다. 세르게이 대공은 입양한 어린 조카인 마리야 파블로브나 여대공과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을 미숙아 시절부터 손수 길렀다. 조카들인 마리야 여대공과 드미트리 대공도 세르게이 대공을 매우 좋게 기록했는데 비록 평생 아이는 낳지 않았을지언정, 엘리자베트와 평생 한 침대에서 잤다고는 하지만 "여성적이기까지 한 독점욕으로 우리를 돌보셨다."고 기록해서 동성애자 의혹을 더욱 부채질했다.] 결국 엘리자베트가 37살이 되는 1901년에 남편 세르게이 대공은 자신의 조카들인 마리야 파블로브나 여대공과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을[* 자신의 동생 파벨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이 첫 번째 아내(그리스와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1870~1891 : [[요르요스 1세]]의 장녀(셋째). 드미트리 대공을 조산으로 낳고 사망했다.)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이었다. 참고로 드미트리 대공은 러시아 혁명 이후 프랑스로 망명을 갔다가 샤넬과 친분관계를 맺는데 그녀에게 조향사인 에르네스트 보를 소개해준 것과 향수 산업에 도움을 준다.] 아내와의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입양]]했다.[* 다만 이는 아이들의 친부인 파벨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이 전처와의 사별 이후 자식들을 내팽개치고, 올가라는 평민 여성과 불륜을 저지르면서 사실상 드미트리 대공과 마리아 여대공이 아버지에게 버림받게 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드미트리와 마리야는 작은아버지인 세르게이 대공에게 입양되지 않았더라면, 제위 계승권을 박탈당하는 것을 넘어서 고아가 될 뻔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참고로 파벨 대공은 결국 불륜녀인 올가와 [[귀천상혼]]을 해 1남 2녀를 낳았지만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면서 살해당했고, 올가 소생의 외아들도 엘리자베트와 같이 살해당했다.] 이런 문제로 비난을 많이 받자 점점 세르게이 대공은 아내와 사이도 멀어지고, 술을 가까이 했다. 엘리자베트는 그래도 대공을 사랑했기에 늘 참고 살아갔다. 엘리자베트는 시조카 [[니콜라이 2세]]와 여동생 [[헤센의 알릭스|알릭스]]의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러시아 황족을 싫어했던 [[빅토리아 여왕]]과 달리 엘리자베트는 두 사람의 관계를 도왔는데, 종교 때문에 니콜라이 2세의 청혼을 거절한 알릭스를 설득하기도 했다. 결국 며칠 뒤 알릭스는 청혼을 받아들여 [[러시아 제국]]의 황후가 되었다. 한편 1903년에 조카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황태자|알렉세이 황태자]]의 [[혈우병]]을 고친다는 명목으로 사이비 종교인 [[그레고리 라스푸틴]]이 러시아 황실에 드나들기 시작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